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(문단 편집) == 동양인 지휘자 == 동양 출신으로 빈 필의 정기연주회 지휘자로 초빙된 된 첫 번째 인물은 [[인도]] 출신 '''[[주빈 메타]]'''였다. 메타는 60년대 이후 현재까지 오랜 긴간 동안 빈 필의 주요 지휘자 중 한명으로 활동하면서 빈 필 정기음악회, 해외순회 공연, 신년음악회, 쇤부른 궁전 여름 음악회 등 빈 필의 수많은 주요 공연을 지휘했다. 이러한 공로로 2001년 빈 필의 '''명예 단원'''으로 추대되었다. [[일본]] 출신인 '''[[오자와 세이지]]'''는 메타와 더불이 빈 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동양인 지휘자로 꼽힌다.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서거하고 아바도가 베를린 필로 가면서 빈 필 지휘자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1990년 이후 무티, 메타, 마젤과 더불어 90년대 빈 필을 이끌던 지휘자 중 한 명이었다. 정기연주회는 물론이고 여러 해외순회 공연도 이끌었다. 오자와가 1990년대 빈 필과 녹음한 음반들은 음반사가 [[필립스]]여서 마케팅을 별로 하지 않는 바람에 많은 판매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빈 필의 숨겨진 명연들이 많다.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동양인 최초로 빈 국립 오페라극장(가극장) 음악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.[* 빈 국립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직은 시기에 따라 역할과 권한에 차이가 크고, 지휘자가 임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 경영인이 임명되는 경우도 많았다. 1956년 칼 뵘의 뒤를 이어 카라얀이 빈 국립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에 취임했을 때, 서베를린 시민들이 결국 카라얀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베를린 필 자리를 이용해 먹었다고 분개했을 정도니 당시 빈 국립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의 위상은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직 못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. 카라얀이 빈국립오페라 경영진 및 오스트리아 문화부와 갈등을 빚고 사임한 이후 한동안 경영인이 음악감독을 맡았지만 1980년 마젤이 취임한 이후 아바도, 오자와, 벨져-뫼스트 등이 이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.] 또한 2002년 빈 필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. 2000년대 후반에 식도암 판정을 받아 빈 필을 지휘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, 그간의 공로로 2010년 빈 필의 '''명예 단원'''으로 추대되었다. 그밖에 이와키 히로유키와 코이즈미 카즈히로도 지휘한 경력이 있다. 한국 출신 지휘자로 빈 필을 지휘한 인물은 '''[[정명훈(지휘자)|정명훈]]'''이 유일하다. [[안익태]]가 훨씬 먼저 지휘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, 안익태가 지휘한 것은 빈 필이 아닌 [[빈 교향악단]](Wiener Symphoniker)이었다. 90년대 당시 일본(2위)과 한국(7위)은 세계 클래식 음반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고, 이에 DG는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[[세이지 오자와]]를 영입했었으나 80년대말 오자와가 필립스로 이적하자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영입된 정명훈을 새로 영입했다. 정명훈은 바스티유 오페라와 함께 정기적으로 DG에서 음반을 녹음했으나 1993년 갑자스레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경질되었다. 갑자기 녹음할 오케스트라를 잃고 붕 떠버린 정명훈을 위해 DG는 1994년 빈 필과의 녹음 세션을 성사시켰고 덕분에 처음으로 빈 필을 지휘하게 되었다. [[안토닌 드보르자크|드보르자크]]의 교향곡 4개와 세레나데 두 곡, [[조아키노 로시니|로시니]]의 '스타바트 마테르(슬픔의 성모)' 등 4장의 음반을 녹음했다.[* 드보르작의 교향곡 3번과 7번이 커플링된 음반, 같은 작곡가의 교향곡 6번과 8번이 커플링된 음반, 같은 작곡가의 관악을 위한 세레나데와 현악을 위한 세레나데가 커플링된 음반,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음반 등 4장이다. 이 중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음반은 선배 지휘자들의 아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훌륭한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, 이후에도 정명훈 다른 지휘자들과 달리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종종 연주 레퍼토리로 활용해왔다.] 빈 필이 녹음보다도 더 권위 있다고 여기는 빈 필 정기음악회 지휘자[* 일례로 [[게오르그 솔티]]는 젊은 시절 소속사인 [[데카]] 덕분에 1950년대 후반 빈 필과 여러 음반을 녹음했지만 더 커리어가 쌓일 때까지 빈 필 정기연주회에는 한동안 초빙되지 못했다. 당시 솔티는 빈 필 단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 베테랑 단원의 상당수가 솔티의 녹음 세션에서 빠지기도 했다.]로서는, 1995년 4월 16일 로린 마젤의 대타로 처음 빈 필 정기음악회 무대에 서게 되었다. 곡목은 드보르작 교향곡 7번과 무소르스키의 전람회의 그림.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빈 필 지휘자로는 거의 초빙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6년 실로 오랜만에 빈 필의 내한공연을 지휘했다.[* 서울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가졌다.] 하지만 정명훈은 한국에서만 지휘봉을 잡았다. 다른 나라 공연에선 [[주빈 메타]]가 지휘를 맡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